히브리서 9장 단번에 드린 제사

첫 언약의 예배 규정

1 첫 번째 언약에도 예배 규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

2 장막이 준비되었는데, 그 첫 번째 부분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었다. 이것을 성소라 한다.

3 두 번째 휘장 안쪽에는 지성소라 불리는 장막이 있었다.

4 거기에는 금 향로와 사방이 금으로 입혀진 언약궤가 있었다.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아론(Aaron)의 싹 난 지팡이, 언약의 돌판들이 있었다.

5 그 위에는 속죄판을 덮고 있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다. 이것들에 대해 지금 일일이 말할 수는 없다.

성막의 구조에 대한 이 묘사는 출애굽기 25-27장과 레위기 16장을 배경으로 한다. 지성소 안의 세 유물 —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 돌판 — 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공급(만나), 하나님의 선택(아론의 지팡이), 하나님의 율법(돌판)을 상징한다. 그러나 저자의 관심은 이 세부 사항들이 아니라, 이 구조 전체가 가리키는 것에 있다.


해마다 들어가는 지성소

6 이것들이 이렇게 준비된 후에, 제사장들은 항상 첫 번째 장막에 들어가 예배 직무를 수행했다.

7 그러나 두 번째 것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갔다. 자신과 백성의 의도치 않은 죄를 위해 드리는 피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8 성령은 이것으로 첫 번째 장막이 아직 서 있는 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9 이것은 현 시대에 대한 상징이다. 그것에 따라 드려지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의 양심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10 그것들은 오직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다양한 씻음에 관한 것 — 개혁의 때까지 부과된 육체의 규정들에 불과하다.


더 완전한 장막으로

11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해서 —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닌, 이 창조에 속하지 않은 것을 통해.

12 그는 염소들과 송아지들의 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피로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

13 만일 염소들과 황소들의 피, 그리고 부정한 자들에게 뿌려진 암송아지의 재가 육체를 정결하게 하는 거룩함을 준다면,

14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흠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씻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9:13-14는 이 장의 핵심 구조다. 레위기의 제사(동물의 피,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육체의 정결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정결하게 한다. 표면적 행위와 내면적 변화 — 이 차이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다.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성령의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암시한다. 시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 영원한 효과를 갖는 이유다.


언약의 중보자

15 이런 이유로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첫 번째 언약 하에서 범한 죄들로부터의 구속을 위해 그가 죽으셨으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려 함이다.

16 유언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유언자의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17 유언은 죽음으로 확증된다. 유언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다.

18 그러므로 첫 번째 언약도 피 없이 세워지지 않았다.

저자는 “언약(διαθήκη, 디아테케)“이라는 그리스어 단어가 동시에 “유언”을 뜻함을 활용한다. 이 언어유희는 히브리어로는 불가능하다 — 이것이 저자가 헬라어에 정통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다. 유언은 유언자의 죽음이 있어야 효력을 발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새 언약을 발효시켰다는 논리다.

19 모세가 율법에 따라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뒤, 물과 붉은 털과 우슬초와 함께 그 피를 취해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렸다.

20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다.”

21 그는 마찬가지로 장막과 예배에 쓰이는 모든 기물에도 피를 뿌렸다.

22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 정결해진다. 피를 흘림이 없으면 용서가 없다.

“피를 흘림이 없으면 용서가 없다” — 이 선언은 레위기 17:11의 원칙에서 온다. “생명이 피에 있다”는 것이 레위기의 전제다. 히브리서는 이 원칙을 그대로 이어받아,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했는지를 설명한다.


단 한 번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정결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 자체는 이것들보다 더 나은 제사들로 정결해져야 한다.

24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손으로 만든 성소 — 진짜의 모형 — 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늘 자체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기 위해.

25 대제사장이 매년 자신의 것이 아닌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가 자신을 반복해서 드리시는 것이 아니다.

26 만일 그렇다면 세상의 기초 이후로 그는 반복해서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는 자기 자신의 제사로 죄를 폐하기 위해 시대들의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셨다.

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28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한 번 드려지셨다. 두 번째로 나타나실 때에는 죄와 관계없이, 그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9장의 결론이자 히브리서 제사 신학의 핵심 주장 — “단 한 번(에파팍스, ἐφάπαξ)”. 레위기 16장의 욤 키푸르는 매년 반복되었다. 반복 자체가 이전 제사의 불완전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 한 번으로 완전했다. “시대들의 끝에” — 저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을 역사의 절정으로 본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예비였고, 이후는 그 효과가 적용되는 시간이다.


다음 장 — 이 단 한 번의 제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제사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