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9장 70주 예언과 다니엘의 기도
예레미야를 읽다
1 메대 족속의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의 왕이 된 원년,
2 곧 그의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들에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
예레미야 25:11-12와 29:10이 70년 포로 기간을 언급한다. 다니엘이 그 말씀을 읽으며 시기를 계산했다. BC 605년에서 70년이 지나면 BC 535년경 — 고레스 칙령(BC 538년)과 맞닿는다. 성경 저자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참조했다는 증거다.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간청했다.
다니엘의 기도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고백하여 말했다.
“주여,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여.
5 우리는 범죄하여 악을 행하고 패역하며 주의 계명과 법도를 떠났으며
6 주의 종 선지자들이 왕들과 귀족들과 조상들과 온 나라 백성에게 주의 이름으로 말씀하셨으나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7 주여, 의로우심이 주께 있고 오늘날 우리의 얼굴에는 수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 왕들에게와 귀족들에게와 조상들에게입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습니다.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자비와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를 거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주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 앞에 세워주신 주의 법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어기고 치우쳐 떠나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저주가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주께서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는 재판관들에게 재난을 내리신 말씀을 확인하셨으니 예루살렘에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은 온 천하 중에 없습니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난이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에서 돌이키고 주의 진리를 깨달으려 하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재난을 예비하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의로우신데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15 주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셔서 오늘날과 같이 명성을 얻으셨으나 우리는 범죄하고 악을 행했습니다.
16 주여, 주의 의를 따라 구하오니 주의 분노와 진노가 예루살렘 성,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가게 하소서.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우리의 죄와 조상들의 죄악들로 말미암아 사방의 이웃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17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청을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황폐한 성소에 비추소서.
18 내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뜨셔서 우리의 황폐된 곳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소서. 우리의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주의 큰 자비하심 때문에 우리가 이 기도를 주 앞에 드리나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어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소서.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과 주의 백성 때문에.”
이 기도는 형식적으로 에스라 9장, 느헤미야 9장의 공동 회개 기도와 같은 장르다. 다니엘이 자신의 개인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죄를 대표하여 고백한다(‘우리’).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은 가장 의로운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는 ‘우리’의 언어를 쓴다. 에스겔 14:14에서 하나님은 다니엘을 욥·노아와 함께 가장 의로운 세 사람 중 하나로 언급한다.
가브리엘이 다시 오다
20 내가 이렇게 기도하며 죄를 고백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간청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21 곧 내가 기도하는 동안 처음에 환상 중에 보았던 사람 가브리엘이 저녁 제사 드릴 때쯤에 빨리 날아서 내게 이르렀다.
22 그가 내게 가르쳐 말했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다.
23 네가 기도를 시작할 때에 명령이 내렸다. 네가 크게 사랑을 받은 자이므로 내가 와서 알리려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살펴 그 환상을 깨달으라.
70주 예언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가 정해졌다. 죄악을 끝내고, 죄를 마치고, 죄악을 용서받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고, 환상과 예언을 인봉하고, 거룩한 자를 기름 부으려 함이니라.
25 그러므로 알아라.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건설하라는 영이 나올 때부터 기름 부은 자인 통치자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될 것이다. 어려운 시절에 그 성이 광장과 참호로 건설될 것이다.
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은 자가 끊겨지나 자기는 아니다. 장차 통치자의 백성이 와서 성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다. 끝은 홍수처럼 올 것이다. 전쟁이 끝까지 있을 것이며 황폐는 작정된 것이다.
27 그가 많은 사람들과 한 이레 동안 굳건한 언약을 세울 것이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다. 또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의 날개 위에 정해진 끝이 임할 때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부어질 것이다.”
70주(이레) — 히브리어 ‘샤부아’(שָׁבוּעַ), 7의 단위. 70 × 7 = 490이지만 일·년 환산을 두고 입장이 갈린다. 해석사가 가장 두텁게 쌓인 예언 본문 중 하나다.
마카베오 시대 해석(비평학 다수): BC 605년 첫 포로(혹은 BC 587년)부터 BC 167년 안티오코스 4세의 성전 모독·BC 164년 마카베오 봉헌까지를 470–490년으로 잡는다. 3세기 신플라톤주의자 포르피리오스(Porphyry) 가 『기독교인 반박』에서 처음 이 도식을 제시했다. 존 콜린스의 1993년 헤르메니아 다니엘 주석이 표준 입장으로 다듬었다 — ‘기름 부음 받은 자’(26절)는 BC 171년 살해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Onias III) 다.
메시아 해석(전통 기독교): 3세기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 4세기 유세비우스(Eusebius), 5세기 히에로니무스(Jerome) 가 시작점을 BC 458년 아닥사스다의 에스라 위임 칙령 또는 BC 445년 느헤미야 위임 칙령으로 잡고 끝점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맞췄다. 19세기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의 『도래할 왕자(The Coming Prince, 1894)』가 정밀 계산을 시도해 영향력을 가졌다.
세대주의 해석: 존 다비(John Nelson Darby, 19세기) 와 1909년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마지막 한 이레(7년)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종말 사이에 떼어놓아 미래 환난기로 읽는다.
랍비 해석: 1세기 『세데르 올람 라바』, 라쉬, 라드락은 끝점을 AD 70년 두 번째 성전 파괴로 잡는다 —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마지막 대제사장이며, “통치자”는 로마의 티투스다.
다음 장 — 다니엘이 하나님을 구하여 기도할 때 천사가 오지 못하고 지연된다. ‘페르시아의 왕자’가 막았기 때문이다. 영적 차원의 싸움이 처음으로 명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