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8장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밖에서의 사랑

1 “당신이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내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당신을 만나 입 맞추어도 사람들이 내게 욕하지 않았을 것이다.

2 내가 당신을 어머니 집으로, 나를 가르치실 이에게 인도하여 들이고, 향기로운 술, 내 석류즙을 마시게 하련만.

3 그의 왼팔이 내 머리 아래 있고, 그의 오른팔이 나를 안는다.”

4 “예루살렘의 딸들아, 부탁한다.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마라. 깨우지 마라.”

1절의 ‘오라비 같았더라면’ — 고대 이스라엘에서 젊은 남녀가 공개적으로 애정을 나누는 것은 금기였다. 그러나 형제자매 사이의 포옹은 자연스러웠다. 신부의 말은 그 사회적 제약에 대한 한탄이다. 사랑이 공개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 이 한 절이 이 책이 단순한 이상화가 아니라 현실 속 사랑을 노래함을 보여준다.


사랑의 선언

5 “광야에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어 올라오는 이가 누구인가?”

“나는 네 어머니가 너를 낳은 사과나무 아래서, 그곳에서 너를 깨웠다. 거기서 네 어머니가 너를 낳았다.”

6 “나를 인장처럼 네 마음에, 인장처럼 네 팔에 두어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다. 그 불꽃은 불꽃이며, 야훼의 불길이다.

7 많은 물도 사랑을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것을 잠기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사랑과 바꾸려 해도, 그는 오히려 조롱을 당할 것이다.”

6절은 아가 전체의 절정이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 죽음이 모든 것을 가져가듯 사랑도 그러하다.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다’ — 상실의 고통이 지옥의 깊이와 같다.

‘살헤베트야(שַׁלְהֶבֶתְיָה)‘를 두고 두 독법이 갈린다. 마빈 포프(Marvin Pope · Anchor Bible 1977)로버트 알터(Robert Alter) 는 끝의 ‘-야(־יָה)‘를 야훼 이름의 축약형으로 보아 ‘야훼의 불길’로 읽는다 — 그렇다면 이 책 전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나오는 유일한 곳이다. 반면 로랑 톤크(Roland Murphy · Hermeneia 1990) 는 ‘-야’를 히브리어의 최상급 강조어미(예: ‘깊은 어둠’ 마웨트 차르마웨트)로 보아 ‘가장 강렬한 불꽃’으로 읽는다. 어느 쪽이든 사랑의 절정에서 거룩의 언어가 스친다.

이 절은 기독교 결혼식에서 가장 많이 낭독되는 성경 구절 중 하나다. 고대 이스라엘의 연애시가 수천 년 뒤 낯선 언어의 예식 공간에서 울린다.


어린 누이

8 “우리에게 어린 누이가 있다. 그녀는 아직 유방이 없다. 날에 누군가 우리 누이에 대해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9 그녀가 성벽이면 우리가 은 탑을 그 위에 세우겠다. 그녀가 문이면 우리가 백향목 판자로 그녀를 두르겠다.”

10 “나는 성벽이며, 내 유방은 망대 같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눈에 화평을 얻은 자 같다.”

8–10절은 신부의 오라비들이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그들은 어린 누이의 혼인 가능성을 논의한다. 신부가 그 논의에 끼어든다 — ‘나는 이미 성벽이다.’ 스스로의 준비를 선언하는 것이다. 오라비들의 보호가 필요 없을 만큼 이미 강해졌다는 것.


포도원

11 “솔로몬이 바알하몬(Baal-hamon)에 포도원을 가졌다. 그가 지키는 자들에게 포도원을 맡겼다. 각 사람이 그 열매를 천 세겔 은으로 드렸다.

12 내 포도원 곧 내 것은 내 앞에 있다. 솔로몬이여, 그 천 세겔을 네 것으로 하고, 열매를 지키는 자들에게는 이백을 줄 것이다.”

신부의 포도원은 1:6에서 처음 등장했다 — ‘나 자신의 포도원은 지키지 못했다.’ 8장의 끝에서 그녀는 말한다 —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다.’ 책의 처음과 끝에 같은 이미지가 대칭을 이룬다. 빼앗겼던 것, 지키지 못했던 것이 마침내 자기 앞에 놓인다. 솔로몬의 거대한 포도원과 대비되는 작지만 자신의 것.


마지막 부름

13 “동산에 사는 이여, 동무들이 네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내게 들려다오.”

14 “내 사랑아, 달려오라. 향기로운 산들에서의 노루나 어린 사슴처럼.”

책이 끝나는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완성이나 귀환이 아니라 또 하나의 초대다. ‘달려오라’ —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사람을 부른다. 사랑은 도달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아가는 결혼식 이후의 안정이 아니라 탐색과 갈망의 연속으로 끝난다.

아가 — 유대교에서 유월절(Passover)에 낭독하는 다섯 두루마리(메길롯) 중 하나다. 이집트 탈출의 밤에 이 사랑시를 읽는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을 이 노래로 기억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읽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두 인간이 부르는 노래다. 세 해석이 하나의 시 안에 공존한다 — 서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