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장 여호와여, 기억하소서
5장은 앞의 네 장과 다르다. 알파벳 두운 구조가 없다. 22절로 이루어져 있어 히브리어 알파벳 수(22자)와 같지만, 각 절이 알파벳 순서로 시작하지 않는다. 형식의 해체. 애가의 마지막에서 언어의 뼈대가 무너진다. 통제된 울음이 아니라 그냥 울음이 된다. 공동체 전체의 기도다.
기억하소서
1 여호와여, 우리에게 일어난 것을 기억하소서. 돌아보소서. 우리의 치욕을 보소서.
2 우리의 기업이 이방에게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집들이 외국인들에게.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가 됐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과부 같습니다.
4 우리가 돈을 내고 물을 마십니다. 우리의 나무는 값을 내고 사야 합니다.
5 우리의 목에 멍에가 씌워졌습니다. 우리는 지쳤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6 우리가 이집트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시리아에도 — 배를 채우기 위해.
7 우리 조상들이 범죄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죄악들을 짊어졌습니다.
8 종들이 우리를 다스립니다. 그들의 손에서 건져줄 자가 없습니다.
9 우리의 목숨을 걸고 광야의 칼을 피하며 빵을 구합니다.
10 우리의 피부는 풀무처럼 뜨겁습니다. 굶주림의 열기로 타올랐습니다.
11 시온에서 여자들이 욕을 당했습니다. 유다 성읍들의 처녀들이.
12 방백들이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장로들의 얼굴이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13 청년들이 맷돌을 지었습니다. 소년들이 나무 아래서 비틀거렸습니다.
14 장로들이 성문을 떠났습니다. 청년들이 그들의 음악을 멈췄습니다.
15 우리 마음의 기쁨이 그쳤습니다. 우리의 춤이 곡으로 변했습니다.
16 우리의 면류관이 떨어졌습니다. 화 있도다, 우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17 이 때문에 우리 마음이 슬픕니다. 이 때문에 우리 눈이 흐렸습니다.
18 시온 산이 황폐했기 때문입니다. 여우들이 그 위를 다닙니다.
영원하신 왕
19 여호와여, 당신은 영원히 보좌에 앉으십니다. 당신의 왕권은 대대에 이릅니다.
20 어찌하여 당신은 우리를 영원히 잊으십니까. 우리를 이렇게 오래 버리십니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당신께로 돌이키소서. 우리가 돌아가겠습니다. 우리 날들을 옛날처럼 새롭게 하소서.
22 당신이 우리를 완전히 버리셨습니까. 당신이 우리를 몹시 진노하셨습니까.
22절이 이 책의 마지막이다. 질문으로 끝난다. ‘당신이 우리를 완전히 버리셨습니까?’ 해답이 없다. 확신이 없다. 그러나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버려진 사람은 다른 곳을 향한다. 여기서는 끝까지 야훼를 향한다. 그것이 이 책의 마지막 몸짓이다.
유대교 회당에서 예레미야애가를 낭독할 때, 마지막 22절 뒤에 21절을 다시 한 번 낭독하는 관행이 있다. 22절의 절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다 — “여호와여, 우리를 당신께로 돌이키소서. 우리가 돌아가겠습니다.” 슬픔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형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예레미야애가의 끝. 다섯 편의 시가 BC 587년 예루살렘의 재 속에서 피어올랐다. 성전이 탔다. 왕이 끌려갔다. 자녀들이 굶었다. 어머니들이 자식을 먹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시인이 잉크를 들었다. 알파벳 글자 수만큼, 또 각 글자마다 세 줄씩, 슬픔을 형식 안에 담았다. 형식 안에 담을 수 없어서 마지막 장에서 형식을 버렸다. 그리고 물었다 — 여호와여, 우리를 잊으셨습니까?
이 물음은 답을 받지 못한 채 책이 끝난다. 그러나 이 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답이다. 기억하는 자가 있었다. 기록한 자가 있었다. 대를 이어 읽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티샤 베아브마다, 유대인들은 이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