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장 돈 사랑
종들과 주인들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 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6:1-2 — 노예제에 대한 바울 서신의 입장은 20세기까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 구절들은 노예에게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권한다.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이런 구절들을 사용했다. 동시에 폐지론자들은 갈라디아서 3:28(“종도 없고 자유인도 없다”), 빌레몬서의 오네시모 이야기를 근거로 복음의 방향성이 해방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목회서신에서 노예는 순종하고, 여성은 조용히 배우고, 교회는 국가 권위에 복종한다. 이 패턴은 이른바 “가정 훈령”(Haustafeln)이라는 고대 가정 관리 문학의 형식과 유사하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복음을 전하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다른 교훈과 돈을 사랑함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 중 하나다. 그러나 자주 오인용된다. 본문은 “돈(money)“이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는다. “돈을 사랑함(love of money)“이 악의 뿌리다. 헬라어 φιλαργυρία(필라르귀리아), “은을 사랑함”이다. 돈 자체의 악함이 아니라 돈을 향한 탐욕의 파괴성이다.
이 구절의 맥락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는 거짓 교사들이다. 종교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을 겨냥한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라는 6절과 대조된다. 참 이익은 자족함이지 재물 축적이 아니다.
헬라-로마 철학, 특히 스토아 철학에서도 자족(αὐτάρκεια, 아우타르케이아)은 최고의 덕목 중 하나였다. 바울은 빌립보서 4:11에서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빌라도(Pontius Pilate)에게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계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6:13 “빌라도에게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 빌라도 앞에서 예수의 심문이 언급된다. 요한복음 18:37의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는 답변을 배경으로 본다. 디모데가 공적 증언을 해야 할 상황에서 예수의 빌라도 앞 증언을 모범으로 제시한다.
6:15-16 — 유대교 찬가 형식의 하나님 송영이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다니엘서와 계시록에서도 나오는 표현이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계시고” — 신의 접근 불가능성(transcendence)에 대한 고전적 표현이다. 이것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신 성육신과 대비된다.
부한 자들을 향한 명령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6:17-19 — 바울(혹은 후대 바울 학파)은 부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이미 부한 자들에게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소망의 대상을 재물에서 하나님으로. 행동의 방향을 쌓음에서 나눔으로. 이것이 “참된 생명”이다.
6:20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 헬라어 ψευδώνυμος γνῶσις(프세우도니모스 그노시스). “거짓 이름의 지식”. 영지주의(Gnosticism)를 직접 지칭하는 것으로 오래 읽혀왔다. 그러나 영지주의가 2세기에 체계화된 운동이라면, 이 언급이 1세기 후반~2세기 초의 작성을 시사할 수 있다는 논거가 된다. 디모데전서의 후대 작성설을 지지하는 구절 중 하나다.
디모데전서는 교회가 제도로 정착되어가는 시기의 문서다. 감독·집사의 자격, 과부 명부, 장로 징계, 이단 대응 — 모두 조직화된 공동체의 언어다.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적 긴박함이 제도적 안정화로 이행하는 지점을 이 편지가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