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장 군사·운동선수·농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2:2 — 신약에서 가장 명확한 제자 훈련 모델이다. 바울 → 디모데 → 충성된 사람들 → 또 다른 사람들. 4세대의 연쇄가 한 절에 담겨 있다. 가르침의 전달이 제도가 아니라 관계를 통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세 가지 비유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군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군사를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2:3-6 — 세 개의 비유가 연속으로 온다. 군사, 운동선수, 농부. 각각 핵심이 다르다.
군사(3-4절):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음. 군사는 민간 생업에 관여하지 않는다. 선교사의 전적 헌신이다.
운동선수(5절): 법대로 경기함. 규칙 없이 이기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복음 전달의 방식이 중요하다.
농부(6절): 수고가 보상을 먼저 받는다. 가장 힘들게 일한 자가 첫 열매를 받는다. 수고와 보상의 정당한 연결이다.
이 세 비유는 바울 서신에서 반복 등장한다. 고린도전서 9:7은 군사와 농부 비유를 선교사 지원 논거로 쓴다. 고린도전서 9:25는 운동선수 비유를 자기 훈련의 근거로 쓴다. 여기서는 디모데 개인을 향한 권면의 그림들이다.
죽었으면 함께 살 것이요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니라.
2:11-13 — 초기 기독교 찬가(hymn) 또는 신앙 고백 단편으로 여겨진다. 네 행의 대칭 구조다. 죽음-삶, 참음-왕 노릇, 부인-부인, 미쁨 없음-미쁘심. 마지막 행이 가장 놀랍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인간의 신실함이 없어도 하나님의 신실함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배신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다. 바로 앞 행이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말다툼을 피하라
14 너는 이것들을 사람들에게 생각나게 하라.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게 하라. 말다툼은 유익이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하느니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짐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Hymenaeus)와 빌레도(Philetus)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15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 헬라어 ὀρθοτομοῦντα(오르토토무운타), “올바르게 자른다”는 뜻이다. 영어 orthodoxy(정통)의 어원 ortho-와 같다. 재봉사가 천을 바르게 자르는 것, 농부가 밭고랑을 곧게 내는 것, 도로를 직선으로 내는 것 등의 이미지로 해석된다. 말씀을 바르게 다루는 것이 기술이자 책임이다.
2:17-18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가르침이다. 부활을 이미 완성된 영적 사건으로 본 것이다. 영지주의적 해석에서 자주 나타나는 입장이다. 물리적 미래 부활을 부정하고 영적 각성을 부활로 이해한 것이다. 이 이단이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린다”고 바울은 경고한다.
깨끗한 그릇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2:20-21 “금 그릇과 질그릇” — 집 안의 그릇들 비유다. 귀한 그릇이 되는 것은 재질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달렸다. 교회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자신을 정결하게 한 자가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게 된다는 논리다.
2:24-26 — 이단을 다루는 방식이 제시된다. 다투지 않음, 온유함, 인내. 논증이 아니라 인격이다. “하나님이 회개를 주실까”라는 표현이 주목된다. 회개도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길 의무가 아니라 온유하게 제시할 의무가 있다. 결과는 하나님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