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장 선한 싸움

마지막 당부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4:1-5 — 디모데후서의 절정이자 목회서신 전체의 결론적 당부다.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는 엄숙한 증인 언급으로 시작한다. 재판의 언어다.

4:3-4 “귀가 가려워서” — 헬라어 κνηθόμενοι(크네토메노이), 간지러워서 긁고 싶어하는 상태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줄 교사를 선택하는 태도다. “스승을 많이 두고”가 더욱 생생하다. 한 명의 바른 교사보다 많은 즐거운 교사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2000년 전 관찰이 현재에도 유효하다.


나는 이미 부어지고 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있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있고” — 헬라어 σπένδομαι(스펜도마이). 제사 의식에서 신에게 바치는 포도주를 천천히 쏟아붓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제사 의식에 비유한다.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방식으로 드려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빌립보서 2:17에서도 같은 이미지를 썼다.

4:7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세 완료 동사가 연속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완성된 사실들이다. 이것은 바울 서신에서 가장 유명한 자기 진술이다. 세 가지가 합쳐져 삶의 완결을 말한다. 싸움(군사), 달려갈 길(경주), 믿음(신뢰) — 앞서 2장에서 사용한 비유들의 최종 적용이다.

4:8 “의의 면류관” —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 경기 우승자의 월계관이다. 재판장이 수여한다. 심판 이미지와 시상 이미지가 합쳐진다.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 이 선언이 편지의 사적 성격을 보편으로 확장한다. 바울의 마지막 말이 자신의 상이 아니라 모든 이의 상을 향한다.


홀로 남은 자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Thessalonica)로 갔고, 그레스게(Crescens)갈라디아(Galatia · ㉸ 갈라시아)로, 디도(Titus · ㉸ 티토)달마디아(Dalmatia · ㉸ 달마티아)로 갔고,

11 누가(Luke · ㉸ 루카)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Mark · ㉸ 마르코)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Tychicus · ㉸ 티키코)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Troas)가보(Carpus)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히 양피지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Alexander)가 나를 심히 해하였으매, 주께서 그의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의 말을 극력히 대항하였느니라.

4:9-15 — 바울의 마지막 편지로 읽힐 때 이 단락의 무게가 달라진다. 구체적인 이름들이 줄지어 나온다. 데마는 떠났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파송되었다. 누가만 남아 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그리고 겉옷과 책을 가져오라.

4:13 “겉옷… 그리고 책들, 특히 양피지에 쓴 것” — 고령의 죄수 바울이 감옥에서도 책을 읽고 있었다는 구체적 장면이다. “양피지에 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구약 두루마리, 메모, 법적 서류 등 다양하게 추정된다. 이 짧은 요청이 인간 바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4:10 데마 — 빌레몬서 24절과 골로새서 4:14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언급되었던 인물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떠났다. 어떤 배경인지 알 수 없지만, 배신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름이 쓰인다는 것은 오래 기억된다는 의미다.

4:11 마가 — 사도행전 15:36-41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때문에 갈라섰다. 마가가 이전 여행에서 중도 이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마가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관계의 회복이 기록된다. 바나바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마가의 이야기가 바울의 마지막 편지에서 화해로 마무리된다.


주께서 건져내시리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4:16-17 — 법정 장면이다. 바울이 첫 번째 심문을 받을 때 아무도 곁에 없었다. 모두 떠났다. 그러나 주께서 곁에 서셨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역설의 상황이다.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시편 22:21의 인용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인용한 바로 그 시편이다. 바울은 예수의 고독과 구원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읽는다.


끝인사

19 브리스가(Prisca · ㉸ 프리스카)아굴라(Aquila · ㉸ 아퀼라)오네시보로(Onesiphorus)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Erastus · ㉸ 에라스토)고린도(Corinth · ㉸ 코린토)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Trophimus · ㉸ 트로피모)는 내가 밀레도(Miletus · ㉸ 밀레토)에 병든 채로 두었노라.

21 너는 겨울 전에 오려고 힘쓰라. 으불로(Eubulus)부데(Pudens)리노(Linus)글라우디아(Claudia)와 모든 형제들이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주께서 네 마음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4:19-22 — 마지막 인사에 이름들이 나열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 로마서 16:3에서 “내 생명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은” 사람들이다.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병든 채로 두었다는 표현은 치유의 은사를 전부 자신이 통제하지 못했음을 바울이 솔직히 밝히는 것이다.

“겨울 전에 오려고 힘쓰라” — 겨울에는 지중해 항해가 불가능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와야 봄까지 함께 있을 수 있다. 이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요청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다. 신학이 아니라 시간표다. 이것이 인간의 편지다.

리노(Linus) — 2세기 이레네우스 가 『이단 반박』 3권에서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 교회의 감독직을 리노에게 맡겼다고 기록한다. 4세기 에우세비우스 의 교회사 도 같은 전승을 전한다. 만약 이 편지가 로마에서 쓰였다면, 이 이름 하나가 초기 기독교 역사의 연결 고리가 된다.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두 절이 이 편지 전체를 감싼다. 개인(“네 마음”)과 공동체(“너희”)가 동시에 은혜의 대상이다. 바울은 홀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공동체를 향한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