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장 하나님의 자녀

어떤 사랑을 받았는가

1 아버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 보아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을 것임을 안다.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분을 향해 이 소망을 가진 사람마다 그분이 순수하신 것처럼 자신을 순수하게 한다.

“그분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을 것”이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가장 대담한 종말론적 약속 중 하나다. 고린도전서 13:12의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빌립보서 3:21의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과 같은 형체로 변하게 하시겠다”와 같은 계열이다. 요한에게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리고 그분을 닮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와 의를 행하는 자

4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한다. 죄는 불법이다.

5 그분이 나타나신 것은 죄들을 없애려는 것임을 너희가 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죄가 없다.

6 그분 안에 머무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분을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한다.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여라.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분이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다.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서 난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지어왔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는 것이다.

9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다.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이다.

10 이것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드러난다. 의를 행하지 않는 자,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것이다.

6절과 9절은 긴장을 만든다. “그분 안에 머무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그런데 1:8에서는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 긴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스어 현재 시제는 지속적 행위를 가리킨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완전한 무죄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지향이다. 하나님의 씨가 안에 있으면, 그 방향이 다르다.


서로 사랑하여라

11 이것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

12 가인(Cain · ㉸ 카인)처럼 되지 마라. 그는 악한 자에게서 나서 자기 형제를 죽였다. 어떤 이유로? 그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형제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다.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마라.

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머문다.

15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마다 살인자다. 살인자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머물지 않음을 너희가 안다.

16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으로 사랑을 알았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

17 세상의 재물을 가진 사람이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면서도 마음을 닫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겠느냐?

18 자녀들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12-15절에서 가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창세기 4장 이후 가인이 신약에서 언급되는 것은 드물다. 여기서, 히브리서 11:4에서, 유다서 11절에서. 가인이 왜 아벨을 죽였는가에 대해 성경은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요한은 해석한다.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웠다. 의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의 동기다. 요한은 이것을 세상이 교회를 미워하는 것과 연결한다. 같은 패턴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확신

19 이것으로 우리가 진리에 속한 것을 알고, 우리 마음이 그분 앞에서 확신을 갖는다.

20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

2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갖는다.

22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에게서 받는다.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분 앞에서 기쁘게 하는 것들을 행하기 때문이다.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

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도 그 안에 머무신다.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무신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해서다.

20절 —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다” — 이것은 위로인가 경고인가. 두 방향으로 읽힌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 때, 하나님의 지식은 그 마음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더 많이 아신다는 것이 심판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에서 요한은 이것을 확신의 근거로 제시한다. 양심의 고소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방향으로.

다음 장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두 번 선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