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3장 피의 도시에 화 있을진저

피의 도시

1 화 있을진저. 피의 도시여. 그 안에 거짓이 가득하고, 강탈이 가득하다. 먹이가 떠나지 않는다.

2 채찍 소리. 바퀴 소리. 달리는 말. 덜컹거리는 병거.

3 올라오는 기병. 번쩍이는 칼. 빛나는 창. 죽임당한 자들의 무리. 시체 더미. 끝이 없는 사체들. 그들은 시체들 위에 걸려 넘어진다.

피의 도시 — ‘이르 다밈(עִיר דָּמִים)’. 니느웨에 대한 고발이다. 아시리아의 전쟁 잔혹성은 고대 세계에서 유명했다. 아시리아 왕들의 자신들의 비문에 적군에 대한 극형을 자랑스럽게 기록했다. 기둥에 산 채로 꿰어 세우기, 포로들의 손발 절단, 살가죽 벗기기 — 이것들이 아시리아 왕들의 전쟁 기록에 직접 등장한다. 나훔은 그 폭력을 역사적으로 알고 있었다.

채찍 소리, 바퀴 소리 — 3절까지 이어지는 이 묘사는 전쟁의 소리와 이미지를 끊어진 문장들로 나열한다. 히브리어 원문은 더 짧다. 동사도 없이 명사만 나열되는 부분이 있다. 독자가 그 장면 안으로 던져지는 효과다.


창녀처럼

4 아름다운 창녀의 많은 음행 때문이다. 마술을 행하는 자. 그 음행으로 민족들을 판 자. 그 마술로 족속들을 판 자.

5 “보아라, 내가 너를 대적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나는 네 치마를 네 얼굴 위로 올리겠다. 민족들에게 네 벌거벗음을 보이겠다. 왕국들에게 네 수치를 보이겠다.

6 내가 혐오스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지겠다. 너를 더럽히겠다. 너를 구경거리로 만들겠다.

7 모든 너를 보는 자가 너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니느웨가 황폐해졌다’라고 말할 것이다. 누가 그녀를 위해 슬퍼하겠느냐? 어디서 내가 위로하는 자들을 너를 위해 찾겠느냐?”

창녀의 은유 — 호세아, 에스겔에서 이스라엘의 배신을 표현할 때 쓰인 이미지가 여기서는 니느웨에게 적용된다. 니느웨가 마술과 외교적 속임으로 민족들을 조종했다는 뜻이다. 아시리아의 제국 통치는 무력만이 아니라 동맹국을 착취하고 조공을 수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훔은 그것을 창녀의 관행으로 본다.


노 아몬처럼

8 너는 강들 가운데 앉은 노 아몬보다 낫느냐? 물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그 방어벽은 바다였다. 그 성벽은 물이었다.

9 에티오피아(Ethiopia)가 그 힘이었다. 애굽(Egypt · ㉸ 이집트)도. 그것은 끝이 없었다. 풋(Put)루빔(Lubim)이 그 돕는 자들이었다.

10 그럼에도 그녀도 포로로 갔다. 사로잡혀 갔다. 그 어린 아이들도 모든 길 어귀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 귀한 자들을 위해 제비를 뽑았다. 그 모든 큰 자들이 사슬에 묶였다.

노 아몬 — 이집트의 테베(Thebes)다. 상이집트의 수도이자 태양신 아문(Amun)의 성소였다. BC 663년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이 이 난공불락의 도시를 함락시켰다. 이 역사적 선례가 나훔의 논거다. 노 아몬도 망했다. 니느웨도 망한다. 크다고 안전한 것이 없다.


니느웨의 방어가 무너진다

11 너도 취할 것이다. 네가 숨겨질 것이다. 너도 원수를 피해 강력한 요새를 구할 것이다.

12 네 모든 요새들은 첫 열매가 달린 무화과나무 같다. 흔들리면 먹는 자의 입 안으로 떨어진다.

13 보아라. 네 백성이 네 안에서 여자들 같다. 네 땅의 문들이 네 원수들에게 활짝 열린다. 불이 네 빗장들을 삼켰다.

14 포위를 위한 물을 길어 모아라. 네 요새들을 튼튼하게 하라. 진흙 속으로 들어가라. 진흙을 밟아라.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킬 것이다. 칼이 너를 베어낼 것이다. 메뚜기처럼 너를 삼킬 것이다. 메뚜기 떼처럼 너 자신을 많이 하라. 황충처럼 너 자신을 많이 하라.

포위를 위한 물을 길어라 — 아이러니로 가득한 명령이다. 준비하라. 단단히 하라. 벽돌을 쌓아라. 그러나 그 모든 준비가 결국 소용없을 것이다. 불이 온다. 칼이 온다. 아무리 준비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 단락이 말하는 것이다.


상인들도 관리들도

16 너는 하늘의 별들보다 더 많이 네 상인들을 번성시켰다. 메뚜기 유충이 허물을 벗고 날아가 버린다.

17 네 관리들은 메뚜기 같다. 네 장군들은 추운 날에 담장에 떼 지어 앉은 큰 메뚜기 같다. 해가 뜨면 날아가 버린다. 그 장소를 모른다. 어디로 갔는지.

메뚜기들이 날아가다 — 해가 뜨면 메뚜기 떼가 일제히 날아간다. 모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체가 없는 것이다. 아시리아의 상인 네트워크와 군사 관료들이 그렇다. 제국이 흔들리면 그들은 사라진다. 보존해야 할 자신의 것이 없는 자들은 제국과 함께 망하지 않는다.


왕들이 잠들다

18 앗수르 왕아, 네 목자들이 잠들었다. 네 귀한 자들이 쉬고 있다. 네 백성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 모으는 자가 없다.

19 네 상처는 치료가 없다. 네 부상은 치명적이다. 너에 관한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며 손뼉 칠 것이다. 너의 악이 지나가지 않은 자가 누가 있었느냐?”

손뼉 치다 — 나훔서의 마지막 이미지다. 니느웨의 멸망 소식을 듣는 민족들이 손뼉을 친다. 슬픔이 아니라 박수다. 오랜 억압 아래 있던 자들의 반응이다. “너의 악이 지나가지 않은 자가 누가 있었느냐” — 아시리아의 잔혹성이 미치지 않은 민족이 없었다. 그 모두가 이 소식을 듣는다.

니느웨 함락의 역사 — BC 612년 8월, 메대의 키악사레스와 바벨론의 나보폴라사르 연합군이 니느웨를 포위했다. 약 세 달의 공성전 끝에 도시가 함락되었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신샤리슈쿤(Sin-shar-ishkun)이 도시와 함께 불에 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훔이 예언한 불과 칼이 실제로 왔다.

나훔서의 위치 — 나훔은 심판 예언서다. 위로가 없이 끝난다. 이스라엘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억압자의 종말이 위로가 되는 방식이다. 시편 137편처럼, 폭력 아래 있던 자들의 기도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신학적으로 불편하지만, 역사적으로 실제였던 감정이다. 성경은 그것을 지우지 않는다.

세 책의 연결 — 오바댜는 형제의 배반을 고발하고, 요나는 보편적 자비의 가능성을 말하고, 나훔은 돌이키지 않는 악에 대한 심판을 기록한다. 세 권이 함께 읽힐 때, 어느 하나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비가 있다. 그러나 역사의 청산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