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3장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사자의 예고
1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하리라.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자기 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바라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2 그러나 그가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겠으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겠느냐?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들의 잿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Levi)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여호와에게 바르게 제물을 드릴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과 같이, 이전 해와 같이 여호와가 기쁘게 받으시리라.”
1절 — 마태 11:10, 마가 1:2, 누가 1:76, 7:27이 이 구절을 세례 요한에게 직접 적용한다. 예수는 “이 사람에 대하여 기록된 것은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라고 말하며 세례 요한을 이 예언의 성취로 지목했다. “내 사자”와 “말라기(내 사자)“가 같은 히브리어다. 예언자의 이름 자체가 예언이 된 셈이다. 2절 — “그 날을 누가 당하겠느냐?” 이것이 2장 17절의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에 대한 답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그러나 그 공의가 도착했을 때 인간이 그것을 견딜 수 있는지가 문제다. 연단하는 불 — 정화의 불이다. 파괴의 불이 아니라 불순물을 제거하는 불.
다섯 번째 논쟁 — 돌아오라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서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하지 아니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부터 너희는 내 규례들을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리이까?’”
5절 — 고발 목록이다. 점술, 간음, 거짓 맹세, 품꾼 착취, 과부·고아·나그네 압제. 스바냐, 아모스, 미가가 같은 목록을 사용했다. 사회 정의와 종교 순수가 분리되지 않는다. 6절 —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한다(אֲנִי יְהוָה לֹא שָׁנִיתִי).” 이 불변성이 이스라엘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다. 하나님이 변하셨다면 약속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불변성이 이스라엘의 생존 근거다. 이것이 역설적이다 — 심판의 불변성은 무서운 것이지만, 언약의 불변성은 구원의 근거가 된다.
여섯 번째 논쟁 — 십일조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이는 십일조와 봉납물이라.
9 너희 곧 이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꾸짖어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 사람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니 이는 너희가 기쁨의 땅이 될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10절 — “나를 시험하여 보라.” 성경에서 하나님이 먼저 시험을 권유하신 유일한 구절이다. 신명기 6:16은 “너희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이 직접 “시험해 보라”고 하신다. 이 하나의 문제에서만은 시험이 허용된다. 헌금을 하고 결과를 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지 경험해 보라는 초대다. 그 경험이 신뢰를 낳는다. 십일조 논쟁에서 “도둑질”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십일조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레위기 27:30). 그것을 드리지 않는 것은 자기 것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착복하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강한 주장이다.
의인과 악인의 구분
13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거슬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거슬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다.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애통하며 행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5 교만한 자가 복이 있다.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는도다.”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서로 말하매 여호와가 그것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시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념책이 그 앞에 기록되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그들은 내가 정하는 날에 나의 소유가 될 것이요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되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하리라.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의 차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의 차이를 분별하리라.”
14-15절 — 하박국의 두 번째 항변과 같다. 악인이 번성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이 말을 하는 자들은 신앙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을 지키려 했으나 그 결과가 실망스러웠던 자들이다. 그 좌절을 말라기는 “완악한 말”이라고 부른다. 16절이 반전이다 — 그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서로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그 대화를 들으신다. 기념책에 기록하신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념책”이 언급되는 희귀한 구절이다(출애굽기 32:32-33, 시편 69:28도 유사한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