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장 화와 노래 사이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화
1 반역하고 더럽혀지고 포악한 도시여, 화 있을진저.
2 그는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훈계를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며 그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느니라.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관들은 이튿날 아침까지 뼈를 남기지 아니하는 저녁 이리라.
4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거짓된 자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느니라.
5 여호와는 그 가운데 계시며 공의를 행하시어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공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거늘 그가 알지 못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로다.
1-5절 — 예루살렘의 네 계층이 차례로 고발된다. 방백(정치), 재판관(사법), 선지자(종교), 제사장(성전). 사회를 지탱해야 할 모든 기둥이 무너졌다. “부르짖는 사자”와 “저녁 이리” —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권력 구조다. 그러나 5절은 전혀 다른 주체를 등장시킨다. “여호와는 그 가운데 계신다.” 부패의 한복판에 공의로운 하나님이 있다. 그 대조가 심판의 근거다.
이방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다
6 “내가 이방 나라들을 멸절했고 그들의 망대들이 황폐해졌으며 나는 그들의 거리를 황폐하게 만들어 아무도 지나가는 자가 없게 하고 그들의 성읍들도 사람이 없이 황폐해지게 했다.
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그를 벌하되 그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러고도 일찍이 일어나 자기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혔느니라.”
이방 민족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로 기능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배우지 않았다. 이웃 도시들의 폐허가 눈앞에 있었다. 그들은 “일찍이 일어나” — 부지런히 — 악을 계속했다. 부지런함이 죄에 쓰였다는 아이러니다.
모으고 부으리라
8 “그러므로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일어나 노략하는 날까지 기다려라. 내가 나라들을 모으고 왕국들을 집합시킬 것이다. 내가 분노와 내 진노와 내 격분을 다 쏟으리니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라.”
8절은 스바냐의 시점에서 절정이다. 그러나 곧바로 전환이 온다. 9절부터의 전환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급격한 장면 전환 중 하나다.
회복의 약속
9 “그 때에 내가 뭇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리니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리라.
10 내게 간구하는 백성, 내가 흩어버린 자들의 딸이 구스(Cush) 강 건너에서 내 제물을 가져오리라.
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인하여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 때에 네 가운데서 교만하게 즐거워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다시는 나의 거룩한 산에서 교만하지 아니하게 할 것임이라.
12 내가 또 너희 중에 가난하고 겸손한 백성을 남겨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며 그 입에 거짓 혀가 없으리라. 그들은 먹고 누우리니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9절 — “뭇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리니.” 창세기 11장에서 흩어진 언어들이 다시 통일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행위로. 바벨 이후 분열된 인류가 하나의 이름을 부르는 날을 스바냐가 내다보았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을 이 구절의 성취로 읽는 해석이 있다.
12-13절의 “가난하고 겸손한 남은 자” — 히브리어 ‘아니이(עני)‘와 ‘달(דָּל)’. 사회적으로 낮은 자, 억눌린 자다. 교만한 자들이 제거된 뒤에 남는 이들은 바로 이 사람들이다. 예수의 산상수훈(“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이 이 전통을 이어받는다.
구약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외칠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심판을 제하여버렸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시리라.
17절 — 히브리어 원문은 더 강렬하다. “야훼 네 하나님이 네 안에 있다(בְּקִרְבֵּךְ). 용사이시다. 구원하신다. 너 때문에 기뻐서 춤추신다(יָשִׂישׂ עָלַיִךְ בְּשִׂמְחָה). 사랑 안에서 잠잠하신다. 너 때문에 기쁨으로 노래하신다(יָגִיל עָלַיִךְ בְּרִנָּה).” 세 동사가 겹쳐진다 — 기쁨으로 춤추고, 조용히 사랑하고, 노래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노래하는 장면은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밖에 없다. 구약 신학의 절정이라 불리는 이유다. 심판을 선포했던 같은 입에서 이 노래가 나온다.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수치가 그들에게 짐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곤고하게 한 자들을 다 벌하리라. 발을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를 모으리라. 온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는 자들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그 때에 내가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으리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세상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너희를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19절 — “발을 저는 자”와 “쫓겨난 자”는 미가 4:6-7의 표현과 동일하다. 두 예언자는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언어를 공유했다. 배제된 자들이 귀환하는 그림 — 이것이 스바냐가 끝을 맺는 방식이다. 심판 선언으로 시작한 책이 하나님의 노래로 끝난다. 폐허의 예언이 축제의 초대로 마무리된다. 스바냐서 전체의 구조가 그 자체로 신학적 선언이다. 진멸이 마지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