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결혼, 고난, 그리고 옥의 영들

아내와 남편

1 이와 같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여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 있더라도, 말 없이 아내의 행실로 얻게 하려고.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결한 행실을 봄으로써.

3 너희의 단장을 머리카락을 땋거나 금 장식을 붙이거나 옷을 입는 것 같은 외모를 꾸미는 것에 두지 마라.

4 오직 마음속 깊이 간직한, 온유하고 차분한 영으로 된 숨겨진 인격에 두어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귀하다.

5 전에 하나님을 소망한 거룩한 여인들도 이렇게 남편에게 복종하며 스스로를 단장했다.

6 사라(Sarah)도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순종했다. 너희도 선을 행하고 어떠한 두려움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의 딸들이다.

7 이와 같이 남편들아, 지식에 따라 아내와 함께 살아라. 아내가 더 약한 그릇임을 인정하고 함께 생명의 은혜를 받을 공동 상속자로 존중하여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이 권면은 당시의 가정 질서 코드(Haustafel)를 따르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용에서 중요한 이동을 보인다. 당시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표준이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아내를 존중하라’는 요구, 두 사람을 ‘생명의 은혜의 공동 상속자’로 규정하는 것은 당시 규범을 초과한다. 기도가 막힐 수 있다는 경고도 특이하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학이다.


선을 행하며 고난받기

8 마지막으로, 너희 모두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자비롭고 겸손하여라.

9 악으로 악을 갚지 마라. 모욕으로 모욕을 갚지 마라. 도리어 복을 빌어라. 이를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복을 유업으로 받으려고.

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기 원하는 사람은 혀를 지켜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입술로 속임을 말하지 말며,

11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

12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고 그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열려 있다. 그러나 주님의 낯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한다.”

10-12절은 시편 34:12-16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시편 34편은 다윗(David)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Abimelech) 앞에서 미친 척하다가 쫓겨난 후 쓴 시다. 박해받는 상황에서 나온 시편이다. 베드로는 박해받는 공동체에게 이 시편을 인용한다. 상황이 겹친다.

13 선을 열심히 행한다면 너희를 해칠 자가 누구냐?

14 그러나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 해도 복이 있다. 그들의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지 마라.

15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하여라.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물어보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준비를 항상 하여라.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16 선한 양심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너희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자들이 부끄러워지게 될 것이다.

17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다.


옥에 있는 영들

18 그리스도도 한 번 죄들을 위해 죽으셨다. 의인이 불의한 자들을 위해. 너희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려고.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19 영으로 가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

20 그들은 전에 노아(Noah)가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기다리시던 때,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다. 방주 안에서 물로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다. 여덟 명.

21 물은 이제 이것과 대응하는 세례로 너희를 구원한다.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22 그분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며,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다.

19-20절은 신약에서 가장 해석이 분분한 구절 중 하나다.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세 가지 주요 해석이 갈린다.

음부 강하설: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4세기 다마스쿠스의 키릴로스 가 노아 시대 죽은 인간들에게 그리스도가 음부에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읽었다.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시며” 조항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타락한 천사설: 1946년 에두아르트 셀비흐(Edward Selwyn) 의 베드로전서 주석 이후 학계 다수 입장. 창세기 6:1-4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에녹 1서(특히 6-16장)의 확장 전승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가 옥에 갇힌 타락한 영들에게 승리를 선포했다고 읽는다. 1946년 보 라이케(Bo Reicke) 의 단행본 The Disobedient Spirits and Christian Baptism 이 이 입장을 정착시켰다.

선재(先在) 그리스도의 노아 설교설: 16세기 칼뱅 과 17세기 청교도 주석가들이 채택. 노아 시대에 그리스도의 영이 노아를 통해 당대 사람들에게 선포했다는 독해다. 현대 복음주의에서 웨인 그루뎀 이 베드로전서 주석 (1988)에서 변호한다.

다음 장 — 고난의 의미. 이웃을 뜨겁게 사랑함. 그리고 각 사람이 받은 은사로 서로를 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