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2장 이 전의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첫 번째 말씀 — 낙심한 자들에게

1 일곱 번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했다.

2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말하라. 또 백성의 남은 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4 그러나 스룹바벨아 이제 강해지라.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강해지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강해지라.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일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노라.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5 이것은 내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너희와 약속한 것이다. 내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3절 —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포로들 중 솔로몬 성전을 직접 본 노인들이 있었다. 에스라 3:12에 따르면 기초가 놓였을 때 “이전 성전을 본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족장들이 대성통곡했다.” 새 성전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학개의 질문은 그 실망감을 직접 건드린다. 솔로몬 성전은 BC 957년경 완공됐다. 자연석으로 쌓인 거대 구조물이었다. 돌아온 포로들이 짓는 작은 성전은 눈물을 자아냈다. 그러나 학개는 크기를 비교하지 않는다. 방향을 바꾼다.


열방을 흔들어 이 집에 채우리라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흔들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흔들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집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7절 —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וּבָאוּ חֶמְדַּת כָּל-הַגּוֹיִם).” 한국어 전통 번역에서 이 구절의 “보배”를 메시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라틴어 불가타(Vulgata)는 ‘desideratus cunctis gentibus(모든 민족이 바라는 자)‘로 번역했고, 이것이 예수를 가리킨다는 메시아적 해석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 ‘헴다트(חֶמְדַּת)‘는 단수 명사가 아닌 복수 의미로 쓰여 재물이나 귀한 것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 9절 —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BC 20년경부터 건설한 화려한 성전에서 일부 성취됐다. 그러나 예수가 그 성전 안에 들어갔을 때 — 기독교 신학은 그것을 완전한 성취로 읽는다. 헤롯 성전은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다.


두 번째 말씀 — 거룩함과 부정함

10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했다.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제 제사장들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보라.

12 사람이 옷 주름에 거룩한 고기를 싸 가지고 그것으로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음식물에 닿으면 그것이 거룩하게 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요.”

13 학개가 또 물었다. “시체를 만진 자가 부정하게 되었다면 그가 이 음식물들 중의 하나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렇게 됩니다.”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니라. 이 백성이 이 나라와 같고 그 손이 행하는 모든 일이 또한 그와 같고 그들이 거기에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2-14절 — 거룩함은 전염되지 않지만 부정함은 전염된다는 레위기 원칙을 학개가 활용한다(레위기 6:27, 민수기 19:22). 제사장들이 자기 법을 자기 공동체에 적용하게 만드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다. 포인트는 이렇다 — 성전을 짓지 않는 동안, 그들의 모든 예배와 제물이 무효였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일종의 만성적 부정함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성전 재건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핵심이었다.

15 “이제 청하건대 오늘부터 이전을 생각해 보라. 여호와의 성전에 돌 위에 돌을 쌓기 전을.

16 그 때에 너희가 어떠하였느냐? 스무 말 곡식 더미에 이르렀어도 열 말뿐이었으며 포도주 틀에 오십 그릇이나 길으러 이르렀어도 스무 그릇뿐이었느니라.

17 내가 한재와 곡식 태움과 우박으로 너희 손이 수고하는 모든 일을 쳤어도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18 오늘부터, 즉 9월 24일부터,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쌓이던 그 날부터 이후를 잘 살펴보라.

19 창고에 씨가 아직 남아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복을 주리라.”

15-19절 — 전후 비교다. 이전에는 20말 기대에 10말, 50그릇 기대에 20그릇. 반이 되지 않는 수확이었다. 이제 공사가 재개된 날부터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19절 마지막 문장 —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복을 주리라.” 이것은 약속이다. 조건부가 아니다. 백성이 이미 돌이켰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이다.


세 번째 말씀 — 스룹바벨에 대한 약속

20 그 달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21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라. 내가 하늘과 땅을 흔들 것이며

22 왕국들의 보좌를 무너뜨리고 나라들의 세력을 없애며 병거와 그에 탄 자들을 무너뜨리리니 말들과 기병들이 각각 그 동료의 칼에 쓰러지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데려다가 도장 반지처럼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라.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23절 — “도장 반지(חוֹתָם).” 고대 근동에서 도장 반지는 왕의 권위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예레미야 22:24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할아버지 여고냐(Jeconiah · ㉸ 여코냐)에게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다 — “내가 너를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하더라도 뽑아 버릴 것이다.” 왕조가 끊겼다. 그러나 이제 그 후손 스룹바벨에게 도장 반지가 회복된다. 저주가 반전된다. 다윗 가문의 회복에 대한 메시아적 암시로 읽혀왔다. 스룹바벨은 마태복음 1장의 예수 족보(27절)에 포함된다.

학개서는 짧다 — 두 장, 38절. 그러나 BC 520년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가장 정밀하게 기록한 문서다. 날짜, 인물, 대화, 공사 재개, 약속. 이 작은 책이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데 직접 기여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에스라 6:14-15에 따르면 성전은 다리오 왕 6년(BC 516년)에 완공된다.